
어느 날 gpt에게 내 인생을 뒤흔들 만한 책 세 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순전히 재미로 물어본 거였다. gpt는 나의 사랑에 대한 세계관을 건드릴거라면서 자기 앞의 생을 추천해주었다. 사랑을 초라하고, 우스꽝스럽고, 서툴고, 가난한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이상하게 인간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는 말이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모모는 열 살로 로자 아줌마가 돈을 받고 기르는 소년 중 한 명이다. 로자 아줌마는 젊은 시절 폴란드에 살았지만 프랑스로 건너와 매춘부일을 하다가 나이가 들자 매춘부의 아이들을 맡아 기르며 돈을 번다. 모모는 자신의 이름으로 매달 우편환이 오는걸 알고 크게 슬퍼한다. 책은 모모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세상을 돌아다녀서 모든걸 다 아는 하밀 할아버지는 그 대답을 하는게 부끄럽다. 만약 하밀 할아버지가 모모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독자가 책을 계속해서 읽게하는 힘을 잃었을거라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사랑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사랑 없이 사는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건 결국 사랑이 없으면 안되는 삶을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로자 아줌마가 열다섯 살의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역시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진작 사람들이 안락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모모는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로자 아줌마를 통해 생의 가혹함을 더 깊숙이 느낀다. 로자 아줌마는 나이가 들었고 뇌에 혈류가 돌지 않아 정신을 잃는 일이 많아졌다. 아줌마는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만 병원에서 연명하며 죽지 못해 사는 것을 가장 끔찍하게 생각한다. 더이상 아줌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남아 있던 아이들도 입양을 가지만 모모는 아줌마 곁을 떠나지 않는다.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결국 한 사람이 늙고 쇠약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사진 속 로자 아줌마와 현재의 로자 아줌마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사랑이란 누군가의 가장 빛나던 순간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변해버린 모습까지 함께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모모는 어느 날 갑자기 네 살을 더 먹게 된다. 로자 아줌마가 모모의 나이를 속인 것은 아줌마도 모모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었던 걸 보여준다. 소설 도입부에 로자 아줌마가 돈을 받고 자신을 기르는 걸 알게된 모모에게 가족이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었지만 모모가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존재라고 맹세한 말이 맞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슬펐다. 아줌마에게도 간절히 사랑할 존재가 필요했던게 느껴져서..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사람들에게 발견된 모모는 생각한다. 하밀 할아버지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모모는 할아버지가 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삶을 겪으면서 스스로 사랑을 깨달은 건 그 자신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다시 처음의 질문을 떠올렸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마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모가 보여준 것은 사랑 없이 살아남는 삶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점이었다. 생이 사람을 바꾸고 파괴해도, 그 사람 곁에 남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도 떠올랐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를 보며 그 일이 쉽지 않은 것은 알았다. 하지만 생이 우리를 짓밟고 가더라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 훨씬 더 마음에 묵직하게 남을 거라는건 알 수 있다.